잉여란 젊은 세대를 불합격 쓰레기로 만드는 언어이다. 사회에서 천대받는 존재, 노예보다 못한 존재, 노예는 일하고 먹여주지만 잉여는 일도 먹여주지도 않는 다. 노동의 의지는 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문제가 아니라며,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문제라고 한다. 간혹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던 것이 사회의 문제라며 싸우자는 사람이 생겼지만, 핵심적인 것과 싸우지 않고 일베처럼 일그러진 분노만 표출한다. 이 분노는 외국인노동자와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기득권에게 우리의 권리를 빼앗고 특권을 누린다는 왜곡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에는 잉여가 넘친다. 컴퓨터를 끄고 현실로 돌아가면 인생은 실전이다.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안다. 현실의 씁쓸함을 맛보고 다시 온라인으로 후퇴한다. 인터넷에서는 강해진다.
잉여는 우리 사회적 기준에 못미치는 사람이 잉여가 된다. 때로는 현실에 타협하지 않거나 자신의 고집이 너무강해 동화되지 못해서 잉여가 되기도한다. 기득권의 권위에 도전을 해도 잉여가 되는 등 너무 많은 잉여들이 배출된다.
잉여는 노동유연화의 산물이다. 싸워보지 못한 채 이미 루저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실패는 과오를 반성하고 문제점의 원인을 분석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싸움 대상이 누군지도 무엇인지도 모른체 태어나자마자 싸워보지도 못한체 루저가 되었고 아무런 문제점이나 원인을 찾지도 못한다.
싸움이 있어야 루저와 위너가 결정되는데 애초부터 싸움이 없이 루저가 되버어린 것이다. 자신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보완점이 무엇인지 알수 없기 때문에 무장적 아무거나 찔러보듯이 자기계발에 열을 올린다. 지금 이순간도 싸워보지도 못하고 계속 패배 중이다. 경기가 끝났는지 진행 중인지도 모른채 말이다.
세상은 잉여가 사람이란 사실을 잊는다. 잉여들을 무시하고 깔보고 경멸의 시선을 보낸다. 잉여가 되지 않기 위한 불안함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난다. 잉여가 되지 않기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자기계발을하고 자신을 치장한다.
잉여가 되지 않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한다. 이들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다. 세상은 점점 잉여들을 기준을 넓혀가며 잉여를 만들어낸다. 과거의 대학졸업장은 평생직장이었으나 현재는 학자금 대출의 다른 이름이다.
잉여가 늘어나자 사회적으로 잉여를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류 기성세대는 잉여를 처리할 방법으로 자비를 배푸는 방법을 선택했다. 청년들은 곤궁과 비참함을 이야기하고 들어주길 원했으나, 자비는 상대방 의사와 상관없이 베푸는 것일 뿐이다.
과거의 모습은 현재에는 부끄러움이 된다. 민주화 운동시대에는 도서관에 앉아 있는 것이 부끄러움이었다면, 지금은 민주화 운동은 학습분위기를 망치는 민폐가 되었다. 잉여가 되지 않기 위한 청년들은 사회적 운동과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등을 겪은 기성세대에게는 지금 청년들은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라며 욕먹는다.
외국의 진보는 쥬류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사회와 교육의 경쟁을 반대한다. 노동자를 위한 것이 진보다. 외국의 주류인 진보는 즐겁게 일하고 놀되 놀이도 삶도 공부의 일종이 되게 하고 약자를 짖누르는 경쟁이 아니라 나쁜놈을 이겨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경쟁을 시킨다.
20대~30대의 잉여의 목소리가 허공의 메아리가 되는 이유는 20~30대가 가진 청춘이라는 무기가 있음에도 노력이 부족하고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30대를 제외한 40~50~60대 전부 치열한 생존 투쟁 가운데 있다. 이들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투여하고 있기 때문에 20~30대와 동일한 조건에 서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지지 못한 청춘과 젊음을 가졌음에도, 돈으로 살수 없고 노력으도 살수 없는 청춘과 젊음이라는 특권을 가졌음에도 중년과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생존 경쟁에 뛰어드는데, 이런 특권을 가진 청년들은 자리에 앉아서 불평불만만 한다. 직장 구할 생각도 안하고 백수로 지낸다.
하지만 똑같은 생존 경쟁 중인 사람이라도, 과거의 전쟁과 보릿고개, 경제성장, 민주화 투쟁을 거치며 20대를 보낸 사람과, 이미 모든 것이 풍요로운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세상을 보며 자란 사람과 흡수해온 문화적 사고적 자양분과 경험치는 다르다.이는 객관적인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전개와 전혀 다른 해결방식을 보여준다. 이런 잉여의 문제는 사회구조적문제와 자라온 환경이 겹쳐져서 생긴 것이다.
잉여들의 문화는 별다른 목적이 없다. 그냥 재미로 이루어진다. 지식이나 정보도 아니고 돈이되지도 않는다. 갑자기 유행이 되었다가 사라지고 다른 재마난 것이 그 자릴 차지한다. 이렇게 잉여의 문화는 반복된다.
과거 세대는 장기적인 미래를 계획하였다면, 지금은 당장 눈앞을 것을 중요시한다. 과거 세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였지만 지금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미래에 얻게되는 보상에 대해 분명하게 알고 있다.
과거 세대에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반면 현재는 비정규직, 고가의 부동산 등 미래를 그릴 수 없다. 과거의 근대적 관료제가 평생 직장, 평생 고용을 의미한다면 IMF 이후 노동의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일상화되고 이는 직업의 불연속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수 없는 것이다.
더 이상 시사문제나 정치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병맛 풍자 잉여문화 등 가벼우면서 풍자화한다. 더 이상 과거처럼 전문가의 견해 등은 중요하지 않다. 차라리 인터넷의 정보를 검색하여 자신이 판단한다. 전문가, 전문성보다는 잉여세대는 개인적 동기와 경험, 환경에 대한 관심과 반영이 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인생이나 게임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자체가 수저 레벨이 존재하는 슈퍼 인생 게임이다. 잉여의 문화는 황당함과 부조리 맥락도 스토리도 없다. 그러나 게임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실제 현실세계에서도 일어난다. 현살이 더 드라마 같고 영화같다. 잉여의 문화는 잉여의 시각되로 형성되고 기성세대의 문화는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형성된다.
이런 시각차가 세대차를 만들어 낸다. 이런 각자의 정의대로 그들의 논리대로 풀려고하지만 논리도 맥락도 없는 잉여문화는 기성세대가 절대로 풀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잉여의 문화는 불안의 해소, 반항 등 무언의 동맹으로 이루어져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시각으로 잉여세대를 정의할 수 없으니 기성세대의 시각과 입맛에 맞춰서 잉여세대를 정의하고 검열한다. 기성세대는 이런 식으로 잉여세대의 사회문제를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 젊은 층으로 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동인 어디에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 세계든 가상 세계든 그 24시간 동일하게 흘러간다. 따라서 우리는 한정된 시간을 이용하여 그 두 공간 중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만약 현실세계가 아주 충만하고 즐겁다면 우리는 바쁜 나머지 맛집 검색, 여행지 검색 말고 가상 세계에 발 들일리 없다.
더 많은 인간관계와 명예, 쾌락 등 현실보다 가상이 비교 우위를 갖고 있기에 가상 세계에 몰두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가 우릴 내 쫓을수도, 우리가 가상세계로 도망 왔을수도 있다. 어쨌든 현실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가상으로 탈출을 결심하였다. 우리가 도망처온 현실은 외모, 돈, 학력 등 차별이 있고 강고한 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의 영향력은 개미보다 못하다. 미묘한 인간관계와 예의범절 등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대부분의 것은 이미 수저 계급에 의해 정해져있다. 이런 곳에서 도망치기 위해 가상공간에 터를 잡고 활동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현실세계의 나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가상 세계에서는 현실에서 드러낼수 없는 성향을 마음것 드러내고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이다. 현실의 원칙은 너무 강하다. 가상세계 잉여들은 가상공간의 현실원칙을 끌고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
이를 선비짓이라고 비난한다. 가상세계에서 맞서 싸워야할 가장 큰 적은 현실이다. 가상세계와 현실을 분리함으로 가상세계를 현실에서 방허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상세계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과 접촉이 불가피 하다.
이를 해결하는 벙법은 커뮤니티를 형상하여 가상세계의 유대감을 지키고 익명의 존재들을 결집하여 현실에 영향을 끼칠수 있는 동맹을 구성하여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런 커뮤니티의 유대감으로 현실을 방어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이런 커뮤니트를 비난하고 파괴하려고 한다. 가상세계의 커뮤니티를 지키기위한 현실과의 투쟁은 잉여의 존재 증명의 투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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