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줄다리기 경기를 벌인다. 이렇게 시작할까? 저렇게 시작할까? 지금치고 들어가야하나? 멈추어야 하나? 어 떻게 보면 타인과 말하기 자체가 줄다리기 경기이다. 끝어당기기도 하고 끌려가기도 한다.
언어의 줄다리기는 서로의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며 벌이는 이념의 줄다리기이다. 언어의 줄다리기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언어의 존재가 사회도 반영하기 때문이다. 언어 속의 사회가 반영되는 것은 언어의 당연한 숙명이다. 언어의 자의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와 의미 사이에 필연적 연관섬은 없다.
하지만 사회성을 갖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약속에 따라 소리와 의이 사이에 연관성이 생긴다. 따라서 언어의 사용자들은 그 사회적 약속을 배우고 따라 해야만 언어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리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렇게 언어는 사회 기반 위에 존재하게 된다. 언어의 학습은 따라하기에 기반한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어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기존 가치와 질서를 언어표현과 함께 그대로 학습하게 된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표현이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지배한다.
기존 가치와 질서에 도전장을 던질 때 제일 먼저하는 일이 언어표현 문제를 지적하는 일이다. 특히 진보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기존 언어 표현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언어표현을 제안한다.
예로 저출산-> 저출생 여자문제에서 부부의 문제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 표현이 사회 공동체 안에서 받아드려지게 노력한다. 이렇게 언어는 사회와 문화 맥락이 담긴 자원인 동시에 사회와 문화적 맥락을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된다. 이러한 이유로 새로운 세상을 안들고 싶을 때 새로운 틀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을 때 새로운 언어표현부터 고민하게 되는 이유다. 언어 표현이 숨기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은연 중에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지배한다.
언어는 습관적으로 굳어진 것이여서 그 언어 표현이 담고 있는 생각과 관점이 우리에게 배게 된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언어표현을 비판적므로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이데몰로기에 동의하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우리 몸에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언어의 줄다리기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가 고민하는 문제, 우리도 모른체 빠져있는 함정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언어 감수성은 높아진다. 언어감수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언어 표현에 우리의 민감도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언어감수성이 높아지면 그 이전까지 거슬리지 않던 표현들이 자꾸거슬리게 되고 마음 쓰이게 된다. 그리고 말을 하면서 자신의 알에 주목하여 자기 말에 담긴 표현을 절검하려는 대토를 가지게 된다. 사소한 말 꼬투리리 삼는 것이 아닌 언어표현 이면에 숨은 이데올로기 사이의 거대하고 치열한 대결이다.
예를 들어 각하는 조선왕조 시대 폐하, 전하, 저하, 각하 등 호칭에 사용되는 것으로 각하는 고위 관식 중 최고 낮은 호칭이다. 이것이 일제감점기 조선총독부 총독 각하에서 이어진 표현으로 신분제와 일제 강점기의 이 데올로기가 이면에 줍겨져 있다. 이는 민주공회국 헌법정신에 위배하는 것이다.
각하란 말은 말을 듣는 사람보다 신분이 낮음을 의미한다. 과거 전하라는 의미가 전아래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하라는 표현을 통해 내가 당신보다 낮은 사랑으로 당신에게 말을 고한다는 의미라는 것으로, 신분제라는 이데솔로기가 숨겨져 있는 표현이다.
해명이 논리적으로 수긍이 가지 않으면 변영에 불과하다. 말의 의도가 있냐 없냐에 따라 말의 책임이 따른다. 한국에서 발달되어 있는 높임말 체계의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상대를 존경해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반대의 부정적인 기능은 서열의식 고착이다. 호칭의 문제에 한국사람들은 가짐 민감하다.
서열과 나이가 중요한 한국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어 사용자들은 상대방의 호칭과 서열 정리를 하지 않고 말하기 어렵다. 이것이 한국어 작동방식이다.
일단 굳어진 표현이 말이되면 그 밀 자체에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그말에 덧씌워진 정서에 민감성을 갖게 된다. 즉 각하가 일본에서 들 어웠기 때문에 쓰지말아야 한다는 문제의식 보다는 각하들이 보여주는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모습 때문에 쓰지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각하들이 탈권위적이고 민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각하란 호칭은 부활시킬수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각하란 말 그지체가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어는 높임법이 발달한 언어이기 때문에 말을 할 때 나이, 직급, 직위 등 위계질서 높임의 등급을 결정하 지 않으면 말을 이어나기가 어렵다. 어떤 호칭을 쓸것인가하는 판단은 늘 한국사람에게 인감한 문제이다.
호칭을 부르는 사람이 상대방을 어떻게 샘각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민감한 운제이다. 누군가 불러주는 나의 호칭은 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칭에 불쾌하기도 유쾌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관심으로 세상을 본다. 하지만 언어는 사회적 약속으로 존재한다는 특성으로 인해 한가지 관점만 담긴채 유통된다. 유통된 언어의 관점은 언어사용자들이 동의하든 하지않든 언어 사용자를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언어 사용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표현이 주는 관점에 길들여지게 된다.
익숙한 표현일수록 그 표현이 담고 있는 관점을 낯설게 보여 자신도 그 표현이 담고 있는 관점에 동의하는지 묻는 것을 매우 어렵다.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똑같은 상황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경축할 일이되고 불안한 일이된다. 어떤 관점에서 상황 / 사례를 바라 보는가에 따라 우리는 이렇게 극단적인 생각과 그 생각으로 인해 서로 다른 언어표현을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말은 한 사람의 관점을 드러내므로 말하는 사람이 그 사태 / 상황 등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알려준다.
그런데 위험한 것은 특정 관점의 언어표현이 굳어져 버려 사람들 사이에 많이 쓰이게 되면 보통의 언어 사용자들은 그 표현이 담고 있는 관점에 무감각해져 버린다. 그 표현이 어떤 관점으로 만들어진 것 표현인지 그 관점이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과 같은지 다른지 확인하지 않고 그 표현을 사회적 약속으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한다.
경축 정밀안전진단 통과 라는 말이 아파트 정밀진단에서 불합격하여 재건축 승인 아파트라는 의미로 받아드리는지,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말인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재건축이 승인되어 긍정적인 관점에서는 부실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불안이 아니라 재건축이 되어 기쁘다는 관점이다.
동일한 대상을 이르는 두가지 표현이 존재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하지만 두 표현이 완전히 똑같은 경우는 없다. 예로 고객과 손님이다. 고객은 손님이고 소비자는 재화를 소비하는 사람이다. 사은품과 경품도 마찬 가지로 사은품은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사례하는 물품이라는 의미이고, 경품은 특정기간 동안 상품을 팔고 사은품이다.
곁들어주는 상품이다. 기업의 관점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고객과 일정액수이상 구매한 손님에게 이런 단어를 쓰는 기사는 부지불식간에 기업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기사를 읽는 독자는 기사의 관점에 큰 영향을 받는다. 명품과 사치품, 검사와 여검사 등 많은 단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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