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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Lineage)

블로그 매력적인 글쓰기 - 리뷰 쓰는 법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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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복수 대명사는 신중하게 쓴다.
회사라는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문장이라면 힘있게 우리를 써도 좋다. 독자는 분명하고 필자가 주장하는 부분을 독자와 같은 위치에서 본다고 확실할 수 있으면 주장하고 싶은 핵심 부분의 주어를 일인칭 복수형으로 쓰는 것은 일정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저달하고자 하는 상대가 필자와 같은 위치에 있지않는다면, 우리는 도리어 독자에게 소외감을 주기 쉽다. 또한 강요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수 있다. 독자에게 행동을 촉구하거나 발견을 주고 싶다면 고자세로 우리는 이라고 쓸것이 아니라 나를 제시하는 것이 독자에게 친근감을 품게 할수 있다. 필자으 관점에서는 이렇게 보이는 구나, 그 경우 나를 대입시키면 어떨까?라고 차분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글이 설득력에 앞선다. 다만 상황판단이 어렵다. 왜소한 개인인 나를 너무 앞세우면 독자가 글쓴이의 개인의견이라고 생각해버릴 가능성도 크다. 글의 내용과 내 말을 들을 상대를 곰곰이 잘 생각하며 일인칭을 다루는 것이 좋다.


일인칭 단수 대명사를 주어로 삼는다
주장의 출발점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일인칭 복수형도 쓸데가 있다. 독자에게 말을 걸고 싶을 때, 필자 혼자의 생각이 아니라 이미 독자가 확실히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판단된다면 써도 좋다. 문제제기나 행동을 촉구하는 글 또는 명확한 타깃을 가진 비판 글에서 자주 보이는 용법이다. 주장하는 문제나 전하고 싶은 가치관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확실히 쓰는 것, 불특정 다수의 존재를 주어로 삼아 마치 그 주장이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처럼 속이지 않고 정확히 개인의 주장으로 글을 쓰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글쓰기 방식이다. 글 성공여부를 떠나서 글에 책임과 각오가 생겨 점점 더 좋은 글이 된다.

나에게 책임을 지운이상 용기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특히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다면 집에 틀어박혀 써서는 독자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 현장을 제대로 알고, 겉핥기가 아니라 깊이 발을 들여 체험하고 독자가 알수 없는 경험을 지식으로 제공하지 않는 글은 재미가 없다. 그런 글은 누구도 읽지 않을 테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도 없다. 탁상곤론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험을 차곡차곡 쌓으려면 글을 쓰는 거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글을 쓰다보면 개인의 주관에만 기대고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쓸데 없이 이러쿵저러쿵하는 느낌이 든다. 이른 글이 나오는 이유는 글쓴이가 나를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관찰의 주체인 나의 특징을 드러내고 전달하려는 내용이 독자적인 관점에서 쓰였다는 점을 강조하다가 이렇게 되는 것이다. 나를 너무 내세우지 않는 비법은 나를 한발짝 뒤에 놓은 다음 상황을 정리하면서 그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실태 따위를 객관적인 사례로 조사하고 그것을 비판한 뒤에 생활하기 곤란한 나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쓰면 그럭저럭 무난한 글이 된다.

상황을 잘 정리하는 것도 관찰에 의해 성립한다. 이를 연습하려면 책상위나 스쳐가는 풍경 같은 것으 글로 묘사해보면 좋다.

어디까지 객관적으로 글을 구성해야 할까? “헤어진 연인이 5년 전에 준 머그잔에 차가운 커피가 아직 반이 남았다 라는 식으로 쓰면 절대 안된다. 옛 연인 이야기는 절대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변호는 되겠지만 완벽히 자신을 지운 투철한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 이것을 핑계삼으면 언제까지나 글이 발전하지 않는다. 주관을 억제한 관찰은 때로 글쓴이가 대상에서 놓친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꾸준히 연습해야만 한다.


철저하게 관찰한다.
철저한 관찰이야말로 글을 아름답게 한다.
<좋은예>
계곡을 사이에 두고 메지로다이와 이어진 듯 보이는 곳에 고목과 노랗게 물든 잎이 어우러져있다. 길 양옆으로 잎을 대부분 잃은 커다란 가로수 둥치가 늘어서 있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겹쳐 있어 한 덩어리로 보이는데, 그 틈새로 하늘이 조각조각 나뉘어 보인다. 이 높은 나무가 좌우로 늘어서 길이 조금 돌아가고 있어 그 끝이 가늘고 긴 삼각형이 된디. 나뭇가지 위쪽으로 노란색 바탕에 푸른색을 섞은 것 같은 잎이 붙어 있는데, 언뜻 보면 흐리멍텅하게 칠한 모습이다. 다만 빛에 따라 잎사귀들이 각자 그늘과 색을 이루어 한번의 붓질로 그린 느낌은 사라지고 복잡한 무엇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글을 소세키 자신의 주관적 생각이 들어간 것은 마지막 복잡한 무엇 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직전까지 날카로운 관찰이 있었기에 그 한문장이 오히려 강력한 목소리가 되어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소세키는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딸을 잃은 마음을 슬프다고 쓰지 않았다. 복잡한 감정이 가슴속을 헤집어 놓았을지 모르지만 조금도 토로하지 않았다. 이동중 관찰해 얻은 시각 정보를 정리하고 문장을 다듬어 썼을 뿐이다. 단지 눈으로 본 것을 나열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으로 소세키 자신의 감정 추이를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관찰도 이정도면 일종의 아름다움이 있다. 


나를 매몰시키지 않도록 쓴다.
나만의 특징이 글을 가치있게 만든다. 주관을 억제하면 부드럽게 읽힌다고 했다. 하지만 주관이 너무 없어도 문제이다. 왜냐면 읽어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일반론, 당연한말, 좋은 말만 늘어놓은 인상 밖에 없고 다시 읽어봐도 발견이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 가치를 전달하는 글이 되려면 글에 상대방에게 전달할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가치가 이미 상대방도 알고 있는 것이라면 거기서 끝이다. 그래서?라고 상대가 더 깊이 묻는다면 그나마 구제할 방법이 없지만, 그렇군으로 끝나버리면 글은 거기서 끝난ㄴ다. 

가치를 전달하려면 자극이 필요하다. 독자가 어?하고 생각하게 하는 의외성, 어 정말? 반문하게 하는 장치, 그건 생각도 못했는데? 하고 놀라게 하는 정보의 수준 등 글에 대한 궁리없이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독자들이 글쓴이인 나를 투명하게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지식 경험 착안점 등 어디가에 나만의 특징이 드러나도록 의식해 보자. 누구나 아는 것 누구나 경험해본 것을 누구나 느낄법하게 쓴다면 자극은 불가능하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글쓰는 의미가 없다. 평소 훈련삼아 반대를 생각해보는 것도 괜찬다. 반대를 가정하여 사고하는 훈련법은 일반론에 매몰되지 않는 나를 키우는 방법이다. 단순히 반대의견을 외쳐서 튀어 보이려한다면 관두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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